왜 일부 행성은 반대로 자전할까? (천왕성, 금성)
천왕성과 금성이 ‘일반적 방향’과 다른 자전을 보이는 이유는 거대 충돌, 조석 효과, 형성 초기의 원반 토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이해됩니다.
대부분의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도는 방향(반시계, 북극 상공 기준)과 같은 방향으로 자전합니다. 이를 순행 자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금성은 매우 느린 역행 자전을, 천왕성은 축이 거의 옆으로 누운 ‘특이한’ 자전을 보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행성 탄생과 진화의 복잡한 과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본문에서는 두 행성이 왜 독특한 자전 상태를 갖게 되었는지, 현재 학계에서 유력하게 논의되는 가설들을 천천히 살펴보겠습니다.
※ 아래는 “금성의 역행 자전”과 “천왕성의 큰 자전축 기울기”를 대비해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 목차
- 🔄 자전의 기준과 ‘역행’의 의미
- 🪐 금성: 느린 역행 자전의 비밀
- 🌀 대기 조석과 힉스? 아니, 금성의 ‘슈퍼회전’
- 🧱 천왕성: 98도 기울기의 탄생
- 🌗 위성계와 고리, 그리고 안정화
- 🌞 계절·기후에 미치는 영향
- 🧪 시뮬레이션이 말하는 형성 시나리오
- 🧭 우리가 얻는 교훈: 행성계의 다양성
🔄 자전의 기준과 ‘역행’의 의미
행성의 자전 방향은 보통 태양의 북극 위에서 내려다본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대부분의 행성은 반시계 방향으로 자전하며, 이것이 ‘순행’입니다. 반대로 시계 방향으로 도는 경우를 ‘역행’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에 대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값이 ‘자전축 경사(기울기)’인데, 지구는 약 23.4도, 천왕성은 약 98도에 달합니다. 즉, 천왕성은 거의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자전하며 사계절의 패턴도 극단적인 변화를 보입니다. 금성은 축 기울기가 거의 180도에 가까운 해석을 갖지만, 실질적으로는 ‘역행 자전’으로 이해하는 편이 직관적입니다.
주의: 역행 자전이라고 해서 행성이 ‘거꾸로 돈다’는 단순한 표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축의 기울기와 자전 속도, 공전과의 상대적 관계가 함께 고려되어야 실제 물리적 효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금성: 느린 역행 자전의 비밀
금성의 자전은 특이합니다. 자전 주기가 약 243 지구일로 매우 느리고, 방향도 역행입니다. 이때 금성의 ‘태양일’(한 낮에서 다음 낮까지의 간격)은 공전과 자전의 상호작용 때문에 약 117 지구일 정도로 나타납니다. 금성이 이런 상태에 도달한 배경으로 다음과 같은 가설이 널리 논의됩니다.
첫째, 거대 충돌 가설입니다. 형성 초기에 달 정도 크기의 원시 행성체가 금성과 비스듬히 충돌하여, 자전축 방향을 크게 바꾸고 자전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충돌은 순식간에 방향과 속도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태양 중력에 의한 조석 토크와 대기-표면 상호작용입니다. 금성은 두꺼운 대기(특히 이산화탄소)와 구름층이 행성 전체를 감싸며, 태양 복사에 의해 대기에 ‘열 조석(thermal tide)’이 생깁니다. 이 대기 조석은 미세하지만 오랜 시간 누적되면 자전에 토크(회전력)를 가해 속도와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금성의 고온·고압 대기는 표면 마찰과 복사 불균형을 통해 자전 상태를 장기적으로 재조정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셋째, 복합 시나리오입니다. 한 번의 거대 충돌만으로는 현재의 매우 느리고 안정된 역행 자전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초기 충돌로 자전축이 뒤집힌 뒤, 수억~수십억 년에 걸친 조석·대기 토크가 속도와 방향을 미세 조정하여 지금과 같은 ‘느린 역행’에 고정되었다는 설명이 균형 잡힌 가설로 받아들여집니다.
🌀 대기 조석과 힉스? 아니, 금성의 ‘슈퍼회전’
금성 대기는 ‘행성 자체의 자전보다 훨씬 빠르게’ 서쪽으로 순환하는 현상을 보입니다. 이를 대기 슈퍼회전이라고 합니다. 상층 대기는 수 일 만에 행성을 한 바퀴 도는데, 이는 표면 자전(243일)과 크게 대비됩니다. 대기의 강력한 순환과 열 조석은 자전에 미묘하지만 지속적인 토크를 가합니다. 이때 대기-지표 마찰, 복사 냉각/가열의 위상차, 행성 파동(켈빈/로스비 파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느리고 역행하는 자전’을 장기적으로 유지시키는 기제 중 하나로 제안됩니다. 즉, 금성의 자전은 단순히 ‘한 번 뒤집힌 상태’가 아니라, 대기 역학이 기어처럼 맞물려 꾸준히 보정되는 동역학적 평형의 산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 천왕성: 98도 기울기의 탄생
천왕성의 자전축은 약 98도로, 거의 옆으로 누워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전은 순행이지만 ‘누운 상태’로 도는 모습이 되고, 어떤 계절에는 한 극이 오랜 시간 태양을 향하고 다른 극은 어둠 속에 머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명은 거대 충돌 가설입니다. 형성 초기에 지구 혹은 화성 정도 크기의 원시 행성체(또는 여러 차례의 중간 크기 충돌)가 비스듬히 들이받으면서 각운동량 벡터가 크게 기울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아이디어는 원시 위성·고리·가스 원반의 중력 토크입니다. 어린 천왕성을 둘러싼 디스크(고리/위성 형성 원반)가 장기간 불균형 토크를 가해 축을 점진적으로 기울였다는 제안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한 방의 충돌’ 대신 ‘오랜 시간의 미는 힘’을 강조합니다. 실제 우주에서는 충돌과 토크가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 위성계와 고리, 그리고 안정화
천왕성의 주요 위성(미란다, 에리얼, 엄브리엘, 티타니아, 오베론)은 대부분 행성의 적도면을 따라 공전합니다. 이는 자전축이 기울어진 이후에 위성계가 정렬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큰 충돌이 있었다면 한동안 위성계는 교란되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석 상호작용과 고리-위성 간 중력이 위성 궤도를 현재의 안정된 상태로 ‘정리’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정렬은 천왕성의 기울기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 진화의 결과임을 암시합니다.
금성에는 큰 위성이 없습니다. 이는 과거 충돌 잔해가 장기적으로 위성으로 남지 못했거나, 남더라도 조석 상호작용으로 낙하·탈출했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큰 위성이 없는 점 역시 금성의 자전이 조석 토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 계절·기후에 미치는 영향
천왕성은 한 극이 수십 년 동안 햇빛을 거의 독점하고 다른 극은 어둠에 잠기는 극단적 계절을 겪습니다. 이런 장주기 에너지 입력의 비대칭은 대기 순환, 구름 형성, 열 수지의 공간·시간 변화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관측에 따르면 천왕성의 대기 밝기와 구름 활동은 계절에 따라 차이를 보이며, 축 기울기가 기후 패턴을 강하게 조절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금성은 자전이 매우 느려 낮/밤의 열 대비가 클 것 같지만, 두꺼운 대기와 구름이 열을 잘 섞어 표면 전체를 고르게 덥힙니다. 또한 슈퍼회전 덕분에 상층 대기는 빠르게 에너지를 수송합니다. 즉, 금성의 기후는 ‘느린 역행 자전’과 ‘강한 대기 역학’이 만들어낸 독특한 결과입니다.
🧪 시뮬레이션이 말하는 형성 시나리오
현대의 수치 시뮬레이션은 충돌 각도·속도, 행성 내부 구조, 대기 두께, 디스크 토크 등 다양한 요소를 바꿔가며 가능한 역사를 재현합니다. 다수의 연구가 “충돌 + 장기 토크”의 복합 시나리오가 현실적이라고 지적합니다. 예컨대 천왕성은 한 번의 대형 충돌 혹은 여러 번의 중형 충돌로 크게 기울어진 뒤, 위성계와 고리의 중력이 자세를 안정화했을 수 있습니다. 금성은 초기에 충돌로 방향이 바뀐 후, 열 조석과 대기-지표 마찰이 느린 역행 자전을 ‘고정점’처럼 유지하게 했다는 그림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오해 금지: “역행 자전 = 반드시 최근의 충돌”은 아닙니다. 초기 사건이 방향을 정했을지라도, 오늘의 상태를 지탱하는 힘은 대기·조석·내부 마찰 같은 장기적·누적적 과정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얻는 교훈: 행성계의 다양성
천왕성과 금성의 사례는 행성계가 얼마나 다양한 경로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별 주위의 원시 원반에서 형성된 수많은 행성체들은 충돌과 합체를 반복하며, 주변 가스·먼지 원반과의 상호작용, 위성·고리의 중력 토크를 통해 회전 상태가 서서히 바뀝니다. 그 결과 어떤 행성은 지구처럼 온건한 기울기를, 어떤 행성은 천왕성처럼 극단적인 기울기를, 또 어떤 행성은 금성처럼 느린 역행 자전을 얻습니다.
이런 다양성은 태양계 밖 외계행성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관측으로 자전이나 축 기울기를 직접 알기는 쉽지 않지만, 대기 순환과 계절성, 광도 변화, 위성·고리 구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천왕성과 금성은 우리에게 ‘행성의 자전은 태어날 때 받은 선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되는 작품’임을 가르쳐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