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별은 ‘폭발하지 않고 사라지는가’
일부 거대별은 눈부신 초신성 폭발 없이 중심이 그대로 붕괴해 검은구멍이 되며, 겉보기에는 ‘조용히 사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는 대질량 별의 마지막을 초신성으로 떠올립니다. 하늘을 몇 주 동안이나 밝히는 거대한 폭발, 그리고 그 잔해로 남는 중성자별이나 검은구멍. 하지만 실제 우주에서는 모든 별이 그렇게 화려하게 떠나지 않습니다. 일정 조건에서는 중심핵의 붕괴가 강력한 폭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외부에서는 별이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장기간 보이지 않게 되는 ‘실패한 초신성’ 시나리오가 전개됩니다.
※ 아래는 ‘폭발 없이 중심이 붕괴해 사라지는 거대별’을 표현한 개념 일러스트(텍스트 없음) 이미지입니다.
🧩 무엇을 ‘사라진 별’이라 부르나
지상 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은 가까운 은하의 밝은 적색초거성들을 장기간 모니터링합니다. 그중에는 수년~수십 년에 걸쳐 밝기가 크게 변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 가시광에서 거의 보이지 않게 되는 후보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변광 주기가 아니라, 중심핵 붕괴 후 강한 폭발 없이 외피가 충분히 튕겨나가지 못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외피가 아주 천천히 밖으로 밀려나거나, 먼지로 덮여 적외선만 남기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사례를 관측가들은 관습적으로 ‘사라진 별’ 혹은 ‘실패한 초신성’ 후보라고 부릅니다.
🌟 표준 교과서: 초신성은 어떻게 터지는가
대략 태양의 8배 이상 질량을 가진 별은 마지막에 중심에서 철(Fe)까지 핵융합을 진행합니다. 철은 융합으로 에너지를 내지 못하므로 중심핵은 자체 중력에 지지되지 못하고 순식간에 붕괴합니다. 붕괴 도중 핵물질이 밀려 서로 부딪히며 형성되는 충격파가 바깥으로 퍼져 나가 별을 산산이 흩어뜨리면, 우리가 아는 핵붕괴형(core-collapse) 초신성이 됩니다. 이때 중심에는 중성자별이나 검은구멍이 남습니다.
하지만 충격파가 별의 바깥층을 뚫고 나오는 과정은 의외로 미묘합니다. 바깥층에서의 광분해(photodisintegration), 중성미자 냉각, 밀도 구조가 만든 흡수·감쇠가 합쳐지면, 충격파의 에너지가 빠르게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는 별이 충분히 크게 폭발하지 못합니다.
🕳️ 실패한 초신성: 충격파가 살아나지 못할 때
붕괴 직후의 충격파는 처음엔 강하지만, 철핵을 부수는 데 에너지를 빼앗기고, 방대한 외피를 밀어 올리면서 약해집니다. 보통은 중심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가 물질과 약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다시 충격파를 가열·부양해 폭발을 일으킨다는 그림(중성미자 가열 메커니즘)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별의 중심이 너무 ‘콤팩트’해(밀도가 급격히 증가) 중성미자 가열이 충분하지 않으면, 충격파는 재점화되지 못하고 안쪽 물질 대부분이 다시 낙하해 버립니다. 그러면 중심은 빠르게 검은구멍으로 붕괴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외부에 뚜렷한 광학 폭발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별이 아주 어두워지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죠. 때로는 몇 달~몇 년 동안 희미한 발광이나 적외선 잔광만 남습니다.
🧪 핵심 물리: 컴팩트니스·광분해·뉴트리노
이론가들은 별의 마지막 구조를 요약하는 ‘컴팩트니스(집적도) 매개변수’로 폭발 성공/실패를 가늠합니다. 중심부가 급격히 조밀하면, 충격파가 외곽으로 나가며 잃는 에너지가 너무 커서 ‘부활’이 어렵습니다. 또한 고온·고밀도에서 철핵이 광자에 의해 부서지는 광분해가 활발해지면, 충격파의 에너지가 흡수되어 폭발 동력이 사라집니다. 이때 중성미자 가열이 충분히 주입되지 않으면 실패한 초신성이 됩니다.
반대로, 구조가 덜 조밀하거나 회전·자기장 효과가 도와주면 충격파는 살아나 강한 폭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즉, 같은 질량대라도 마지막 내부 구조의 차이가 결과를 크게 갈라놓습니다.
🌬️ ‘조용한 탈피’: 뉴트리노 질량 손실이 남기는 희미한 신호
붕괴 순간 중심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중성미자로 빠져나가며, 중력원으로 작용하는 유효 중력질량이 순식간에 줄어듭니다. 그러면 느슨하게 묶인 외피층이 약간 부풀어 오르며 별의 일부가 천천히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고전적으로 나데진(Nadezhin) 메커니즘이라 부르며, 결과는 극히 희미하고 장주기의 발광일 수 있습니다. 즉 대폭발은 없지만, 별이 완전히 조용했던 것도 아닙니다. 외피가 먼지를 만들면 광학에서는 더 보이지 않고, 적외선에서만 흔적이 남습니다.
🔭 관측 단서: ‘사라진’ 후보와 어떻게 구분하나
관측가들은 같은 은하에서 수천 개의 거대별을 장기 촬영해 밝기 변화를 추적합니다. 어느 별이 평소보다 느리게 밝아졌다가 급격히 어두워지고, 이후 여러 해에 걸쳐 적외선에서만 약한 잔광을 보이면, 실패한 초신성 후보로 지목됩니다. 중요한 검증은 “진짜로 별이 사라졌는가?”입니다. 먼지나 가림 효과로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중심 붕괴로 광원이 꺼졌는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파장 추적(가시광·적외선·전파)과 고해상도 영상이 필요합니다. 먼지 가림이라면 시간이 지나며 다시 밝아질 수 있고, 실패한 초신성이라면 지속적인 희미한 적외선만 남거나 완전히 암흑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큽니다. 드물게는 약한 전파가 늦게 나타나 외피가 주변 물질과 충돌하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 대안 경로들: 낙하형·쌍불안정과 무엇이 다른가
낙하형(fallback) 초신성에서는 초기 폭발이 일어나도 느린 물질이 다시 중심으로 떨어져 검은구멍을 키웁니다. 이 경우에는 일반 초신성보다 더 어둡고 빠르게 사라지는 광곡선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면 쌍불안정(pair-instability)에서는 매우 대질량 별의 중심에서 감마선이 전자-양전자 쌍을 만들며 압력이 급감, 거대한 폭발로 별 전체를 날려 버립니다. 즉 쌍불안정은 ‘폭발 없음’과는 정반대의 극단입니다.
‘폭발 없이 사라짐’은 충격파 부활 실패 + 외피의 부분적 탈출이라는 조합에 더 가깝습니다. 낙하형과 구분하려면 광도·스펙트럼·적외선 잔광을 함께 분석해야 합니다.
🛰️ 앞으로의 검증: 중성미자·중력파·광학 모니터링
지구 가까운 은하에서 실패한 초신성이 일어난다면, 중성미자 관측기가 수 초 동안 강한 신호를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비대칭 붕괴가 일어나면 중력파의 미약한 흔적이 기대됩니다. 광학·적외선·전파망원경은 같은 좌표를 장기간 추적하여, 재밝기가 있는지, 먼지의 냉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살핍니다. 이러한 다중 메신저 자료가 모이면, 실패한 초신성과 낙하형·먼지가림 등의 경쟁 가설을 더 분명히 가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넓은 하늘을 빠르게 스캔하는 시간영역 서베이(wide-field time-domain survey)가 결정적입니다. 수많은 거대별의 ‘마지막’을 통계적으로 모으면, 태생 질량·금속함량·회전이 실패 확률에 미치는 인과 구조도 드러납니다.
🧭 정리: 조용한 퇴장의 물리
별이 폭발하지 않고 사라지는 가장 간단한 개념도는 이렇습니다. 중심핵이 철까지 도달해 붕괴 → 초기 충격파는 생기지만 광분해·중성미자 냉각 등으로 약화 → 컴팩트한 구조 탓에 부활 실패 → 중심이 검은구멍으로 붕괴 → 중성미자 방출로 유효 중력질량이 줄며 외피 일부가 느리게 탈출 → 광학 폭발은 거의 없고, 장기간 희미한 적외선만 남는다. 이 시나리오가 바로 관측가들이 찾는 ‘실패한 초신성’입니다.
우리는 화려한 폭발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도 우주가 얼마나 정교한 물리를 작동시키는지 배웁니다. 조용히 꺼진 자리에는, 빛 대신 중성미자와 중력이 이야기를 남깁니다. 그 실마리를 따라가면, 별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미세한 조건—밀도 구조, 회전, 자기장, 주변 환경—을 이해하게 되고, 결국은 검은구멍이 어디서, 얼마나 자주 태어나는지에 대한 해답에 다가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