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멀리 있는 천체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먼 세계는 ‘가장 멀리 있는 은하’가 아니라, 우주가 막 투명해졌을 때의 빛, 즉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입니다.
이 문장은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멀다”는 말은 단순히 망원경으로 더 작은 점을 보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시점의 우주를’ 보고 있는지부터 차근차근 정리해야 합니다.
※ 아래는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MB)을 개념적으로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 ‘볼 수 있다’의 기준부터 정리하기
천문학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은 맨눈, 광학 망원경으로 보인다는 뜻을 넘어, 전파·적외선·가시광·자외선·X선·감마선처럼 다양한 파장을 가진 빛(전자기파)을 감지한다는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눈이 직접 볼 수 없더라도, 전파망원경이나 적외선 망원경이 감지하면 ‘봤다’고 표현합니다. 더 나아가, 중성미자나 중력파처럼 빛이 아닌 ‘다른 메신저’를 감지하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다만 본 글에서는 빛으로 본 우주를 중심으로 설명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멀다’의 기준입니다. 우리가 받는 빛은 과거에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멀리”는 가장 오래된 과거의 정보를 담은 빛을 의미하곤 합니다. 여기서 혼동을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주는 팽창 중이므로, 한 천체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동안 그 천체와 우리 사이의 공간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빛이 걸린 시간(lookback time)과 지금 기준 거리(comoving distance)가 서로 다릅니다.
“가장 멀리 있는 천체 = 지금 가장 먼 위치에 있는 물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우리는 과거의 빛을 보고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의 우주를 보고 있는가’가 핵심입니다.
🌌 가장 멀리서 온 빛: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MB)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은 빅뱅 후 약 38만 년이 지났을 때, 뜨겁던 우주가 식어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재결합)하면서 우주가 ‘투명’해졌을 때 방출된 빛입니다. 이때부터 빛은 자유롭게 퍼져나올 수 있었고, 그 빛의 일부가 지금 우리에게 도달해 하늘 전역을 미세한 얼룩 무늬로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마이크로파(전자기파의 매우 긴 파장 영역)로 감지합니다.
CMB는 우주가 아기였을 때의 초상화에 가깝습니다. 개개의 별이나 은하 같은 ‘천체’를 본다기보다, “우주가 처음으로 빛을 내어 보이기 시작하던 벽(마지막 산란면)”을 보는 것입니다. 거리 개념으로 말하면, 오늘날 기준(공변좌표계)으로 약 460억 광년에 해당하는 지평선 근처에서 온 빛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빛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지만, 우주가 팽창했기 때문에 ‘지금 거리’는 더 멉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은 명확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CMB—우주가 막 투명해진 순간의 빛—입니다. 이 빛은 우리가 현재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우주 정보이기도 합니다.
🛰️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와 ‘두 가지 거리’
우리는 종종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니, 가장 멀어도 138억 광년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에, 지금 기준 거리(공변거리)는 빛의 이동 거리(뤽백 타임)보다 큽니다. 간단히 비유하면,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공을 던지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공이 날아가는 동안 바닥이 늘어나므로,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현재 간격은 공이 실제로 ‘날아간 길이’보다 더욱 멀어질 수 있습니다.
이 차이 때문에 관측 가능한 우주(observable universe)의 현재 반경은 약 460억 광년 규모로 설명됩니다. 이 범위 바깥의 빛은 아직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가장 멀리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빛의 ‘최대 과거’를 보는가로 바꾸어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 가장 먼 ‘천체’: 초기 은하와 퀘이사
그렇다면 CMB를 제외하고 ‘하나의 천체’로서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먼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빅뱅 후 수억 년 이내에 생겨난 ‘아주 어린 은하들’입니다. 이들은 엄청난 적색편이(z)를 보이며, 우리에게 올 때까지 우주의 팽창으로 파장이 길게 늘어져 적외선 영역에서 관측됩니다. 허블 우주망원경(HST)이 문을 열었던 시대에는 z≈10 안팎의 기록이 화제였고, 최근에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의 등장으로 우주 나이 3억 년보다 이른 시기의 은하 후보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과학적 절차가 따릅니다. 초기 발표의 일부는 ‘색을 이용한 후보 선정’(포토메트릭 적색편이) 단계이며, 후속 분광 관측으로 스펙트럼 선을 직접 확인해 정확한 적색편이를 확정해야 합니다. 요약하면, 가장 먼 은하의 ‘기록’은 연구가 진행되며 갱신될 수 있고, 검증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퀘이사(활동은하핵)는 초기 우주에서도 발견되지만, 아주 어린 시기에 이미 거대한 블랙홀이 있었음을 시사하여 우주론과 은하 진화 연구에 큰 도전 과제를 던집니다. 이러한 극초기 천체들은 우주 최초의 별(인구 III) 형성, 첫 별빛이 수소 안개를 걷어내는 재이온화 시기와 맞물려, 우주가 ‘별의 시대’로 진입하는 변곡점을 보여줍니다.
🪞 빛을 돕는 돋보기: 중력렌즈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질량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은하단은 마치 자연이 만든 거대한 렌즈처럼 뒤쪽에 있는 희미하고 먼 은하의 빛을 확대하고, 때로는 여러 개로 분리해 보이게 합니다. 이를 중력렌즈라고 부릅니다. 중력렌즈는 우리가 직접 보기에는 너무 희미한 초기 은하를 관측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특히 강한 중력렌즈 영역에서는 배율이 수십 배까지 올라가 관측 한계를 넓힙니다. 물론 렌즈 구조를 정밀하게 모델링해야 실제 밝기와 크기를 바르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관측과 이론이 만나는 흥미로운 연구 영역이기도 합니다.
📏 우리는 거리를 어떻게 재나?—‘거리 사다리’의 원리
“가장 멀리 있는 천체”를 논하려면, 거리 측정이 탄탄해야 합니다. 가까운 우주는 연주시차로, 그 다음은 세페이드 변광성과 Ia형 초신성 같은 표준촉광원으로 스텝을 밟아 올라갑니다. 더 먼 우주에서는 스펙트럼 선의 적색편이를 이용해 우주 팽창률(허블 상수)과의 관계로 거리를 추정합니다.
적외선으로 우주의 먼 과거를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파장이 늘어나 붉어졌다(적색편이)고 이해하면, 왜 초기 은하 탐색에 적외선 망원경이 필수인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 더 먼 ‘흔적들’: 중성미자 배경과 원시 중력파(아직 미검출)
빛보다 먼저, 우주에는 중성미자 배경(Cosmic Neutrino Background)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예측됩니다(빅뱅 후 약 1초 무렵). 또, 원시 중력파는 우주가 탄생 직후 아주 짧은 순간 폭발적으로 팽창했다는 인플레이션의 흔적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신호를 직접 포착한다면, CMB보다도 더 이른 우주의 물리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중성미자 배경과 원시 중력파(인플레이션 B-모드)의 ‘확정적 검출’이 이루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즉, 지금 당장 우리 눈(혹은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신호는 여전히 CMB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정리: ‘가장 멀리’를 이해하는 세 가지 관점
마지막으로, 질문을 세 갈래로 쪼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빛으로 본 가장 먼 세계는 CMB”입니다. 우리는 우주가 투명해진 직후의 빛을 보고 있으며, 이는 하늘 전체에 깔린 가장 오래된 광자 지도를 제공합니다.
둘째, “개별 천체로 본 가장 먼 대상은 초기 은하/퀘이사”입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의 등장으로 우주 나이 수억 년 이내, 매우 높은 적색편이의 대상들이 탐지되고 있으며, 기록은 과학적 검증을 거치며 업데이트됩니다.
셋째, “우주의 크기 이해에는 ‘지금 거리’와 ‘빛의 나이’라는 두 자가자(尺)가 있다”는 점입니다.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에 현재의 거리와 빛의 이동 시간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할 때, “138억 년”과 “460억 광년”이 함께 등장하는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결국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멀리 있는 천체는?”이라는 물음은 관측 파장, 시간의 관점, 우주 팽창의 물리를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CMB로 우주의 유년기를, 초기 은하로 별과 은하가 태동하던 시기를, 그리고 중력렌즈와 정교한 거리 사다리로 관측의 경계를 조금씩 넓혀 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멀다”의 정의는 더욱 정밀해지고, 우주에 대한 우리의 그림은 점점 선명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사실은 시간을 거슬러 보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작은 점 하나도 수만~수십억 년의 과거를 전해줍니다. 그 끝자락에서 만나는 CMB는 우주가 막 밝아지던 그 순간의 메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더 민감한 망원경과 새로운 메신저(중력파, 중성미자 등)로 “가장 멀리”의 경계를 계속 밀어낼 것입니다.
우주의 크기와 시간 감각은 일상과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때로는 숫자가 낯설고 개념이 복잡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 빛은 과거에서 온다는 사실, 그리고 서로 다른 ‘거리’의 정의를 구분하는 일—이 세 가지만 잡으면 “가장 멀리”라는 질문은 한결 명확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망원경이 발전할수록 기록은 바뀔 수 있지만, CMB가 “가장 오래된 빛”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위에 쌓이는 새로운 발견들이 우리에게 더 촘촘한 우주 지도를 선물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