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소행성은 대부분 ‘감자 모양’일까?
소행성의 ‘감자 모양’은 중력보다 재료 강도가 더 크게 작용하는 크기 영역, 충돌로 인한 파쇄와 재축적(루블파일), 자전과 YORP 효과가 만든 회전 한계, 그리고 얼음·암석 조성 차이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망원경으로 본 많은 소행성은 둥근 공처럼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고 길쭉하며, 때로는 땅콩이나 빗자루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핵심은 “무엇이 모양을 지배하느냐”입니다. 큰 천체는 중력이 강해서 스스로 둥글게 변하지만, 작은 천체는 바위의 강도·마찰·응집력이 중력보다 세서 “감자 모양”을 유지합니다. 여기에 수십억 년 동안의 충돌과 회전, 태양빛이 주는 미세한 토크(YORP)가 더해져, 우리가 보는 특유의 형태가 완성됩니다.
※ 아래는 ‘소행성 크기에 따른 모양 변화(작을수록 감자, 클수록 구형)’를 개념적으로 표현한 삽화 예시 이미지입니다.
목차
- 🍠 작은 천체가 왜 둥글지 않을까 — 중력 vs. 재료 강도
- 🧱 강도 지배 영역의 형상 — ‘감자 모양’의 물리
- 🪨 충돌과 재축적(루블파일) — 부서지고 다시 뭉치는 세계
- 🌀 자전과 YORP 효과 — 토프셰이프와 회전 한계
- 🧲 중력 지배로 넘어가는 경계 — ‘포테이토 레이디우스’
- 🧪 재료·온도·얼음 — 내부 구조가 만드는 차이
- 🛰️ 관측 사례 모음 — 이토카와, 베누, 류구, 에로스, 베스타
- 🧭 정리와 안전한 해석 — 감자가 들려주는 형성사
🍠 작은 천체가 왜 둥글지 않을까 — 중력 vs. 재료 강도
천체의 모양은 크게 두 힘의 경쟁으로 결정됩니다. 하나는 물질을 안쪽으로 끌어당겨 표면을 매끈하게 만드는 중력, 다른 하나는 바위·자갈·모래가 버티는 재료 강도(전단강도·마찰·응집)입니다. 매우 큰 천체(큰 위성·왜행성 이상)는 중력이 강해 고체가 서서히 흐르듯 변형되어 정수압 평형(거의 구형)에 가깝게 갑니다. 반대로 수십~수백 km 이하의 소행성은 중력이 약해 바위 덩어리가 스스로를 둥글게 만들 정도의 압축을 주지 못합니다. 이 영역에서는 바위의 모서리, 충돌 구덩이, 낙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울퉁불퉁한 감자가 됩니다.
오해 주의: “작으니 아무 모양이나 된다”가 아닙니다. 작은 천체도 균형을 찾습니다. 다만 그 균형이 ‘매끄러운 구’가 아니라, 재료 강도와 낮은 중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형성된 감자형·땅콩형·원반형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 강도 지배 영역의 형상 — ‘감자 모양’의 물리
바위 덩어리의 표면을 누르면 일정 압력까지는 모양이 유지되고, 그 이상이면 깨지거나 미끄러집니다. 소행성도 같습니다. 재료 강도가 중력보다 크면 비대칭 돌출·골짜기가 남고, 내부 균열과 층리, 큰 블록이 서로 기대고 얽힌 구조가 고정됩니다. 중력이 약하니 바위가 경사면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고, 낮은 중력의 마찰 안정 덕분에 급경사 절벽도 오래 유지됩니다. 반대로 표면에 잔자갈(레골리스)이 많으면, 작은 충격에도 표면 흐름이 벌어져 산등성이·승모양 능선이 생깁니다. 이런 현상들이 모여 “감자”의 요철을 강화합니다.
🪨 충돌과 재축적(루블파일) — 부서지고 다시 뭉치는 세계
소행성대는 충돌이 일상인 환경입니다. 크고 작은 충돌은 천체를 파쇄하고, 파편은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재축적됩니다. 이렇게 생긴 천체를 흔히 루블파일(rubble pile)이라 부릅니다. 루블파일은 단단한 바위덩어리 ‘통짜’가 아니라, 다양한 크기의 블록과 빈 공간(공극)이 모여 만든 느슨한 조합입니다. 그래서 충돌 흔적이 깊고 크며, 내부 밀도가 낮고, 중력 포텐셜이 위치마다 들쭉날쭉합니다. 공극이 많을수록 충격을 조금씩 흡수·완화하여, 또 다른 충돌에서도 완전 파괴를 피하는 쿠션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대가로 모양은 더 불규칙해집니다.
🌀 자전과 YORP 효과 — 토프셰이프와 회전 한계
소행성은 태양빛을 받았다가 방출할 때 생기는 미세한 반작용 토크(YORP 효과)로 자전 속도가 천천히 변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오랫동안 쌓이면 회전이 빨라져, 적도 부근으로 자갈이 이동해 ‘토프셰이프(top-shape)’가 되거나, 느슨한 루블파일은 적도 돌출이 심해집니다. 회전이 더 빨라지면 응집력과 마찰이 버티지 못해 표면 물질이 방출되거나, 심하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루블파일이 응집력 없이 중력과 마찰만으로 버틸 때의 대표적 자전 한계는 수시간대(약 2~3시간 부근)입니다. 이 한계 근처로 가면 모양은 더 납작·돌출되며 ‘감자+원반’ 같은 절충 형태로 진화합니다.
한편 충돌은 회전을 느리게 만들 수도, 비틀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불규칙한 관성모멘트 분포는 자세 안정에 영향을 주어, 시간이 지나며 내부 마찰·조석 효과로 에너지가 소산되면 최소 에너지 상태를 향해 자세가 정렬됩니다. 그 과정에서도 표면 흐름과 산등성이 재배치가 일어나 모양이 바뀝니다.
※ 아래는 ‘YORP로 가속 → 적도 물질 이동 → 토프셰이프 형성 → 한계 도달 시 표면 방출’ 과정을 단계별로 나타낸 예시 이미지입니다.
🧲 중력 지배로 넘어가는 경계 — ‘포테이토 레이디우스’
크기가 커지면 중력은 체적에 비례해 빠르게 강해지고, 재료 강도는 단면에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느리게 커집니다. 어느 지점부터는 중력이 표면의 요철을 길게 유지하지 못하게 눌러, 전체가 유체처럼 느리게 변형해 더 둥글어집니다. 이 전이를 흔히 ‘포테이토 레이디우스’라고 부르는데, 대략 수백 km 안팎의 규모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보다 작은 천체는 감자·땅콩형이 흔하고, 이보다 큰 천체는 구형에 가까운 왜행성·큰 위성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조성(얼음/암석 비율), 내부 열사(과거의 가열·용융), 충돌 역사에 따라 경계값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재료·온도·얼음 — 내부 구조가 만드는 차이
소행성이라고 다 같은 바위는 아닙니다. 탄소질(C형)은 휘발성 물질과 수화광물이 많아 밀도가 낮고 약한 편이며, 규산염(S형)은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금속(M형)은 훨씬 치밀하고 강합니다. 얼음이 섞인 경우에는 온도에 따라 강도가 크게 달라지고, 일교차로 열피로가 누적되어 표면이 잘 부서집니다. 내부에 큰 공극이 있으면 충격 파동이 굴절·분산되어 외형이 더 불규칙하게 남습니다. 이런 모든 요소가 합쳐져 “왜 저 소행성은 유난히 길쭉한가, 왜 저건 둥근데 적도에 테두리가 있는가” 같은 차이를 설명해 줍니다.
🛰️ 관측 사례 모음 — 이토카와, 베누, 류구, 에로스, 베스타
이토카와는 유명한 땅콩형 접촉쌍성(contact binary)입니다. 두 덩어리가 낮은 속도로 만나 하나가 되었고, 표면에는 크고 작은 바위가 흩어진 루블파일 특성이 뚜렷합니다. 베누와 류구는 토프셰이프의 대표로, 빠른 자전과 낮은 중력이 적도에 물질을 모아 적도 능선을 만들었습니다. 에로스는 길쭉한 형태와 거대한 충돌구, 불균일 중력장이 잘 알려져 있어, “감자형 천체의 표면 중력은 위치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반대로 베스타는 상대적으로 커서 거의 구형에 가깝지만, 남반구의 초대형 분화구가 전체 형태를 왜곡시켜 “포테이토 레이디우스 근방”의 미묘한 균형을 보여 줍니다.
이 사례들을 한 줄로 묶으면, 충돌(파쇄)→재축적(루블파일)→자전(YORP)→표면 유동이라는 공통된 테마가 보입니다. 그리고 각 천체의 조성·열사·크기가 그 테마의 강약을 조절합니다. 결과적으로 “감자”는 우연한 모양이 아니라, 행성형성사의 축소판 기록입니다.
🧭 정리와 안전한 해석 — 감자가 들려주는 형성사
왜 소행성은 ‘감자 모양’일까요? 요약하면, 중력이 약한 크기 영역에서는 재료 강도·마찰·응집이 모양을 지배하고, 수십억 년의 충돌과 재축적이 울퉁불퉁을 남기며, 태양빛이 주는 YORP 토크와 회전 진화가 능선·토프셰이프를 덧칠했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커지면 중력이 이기면서 점점 둥글어지고(포테이토 레이디우스 통과), 조성과 내부 구조가 그 사이사이의 가지런함과 지저분함을 결정합니다.
실용적으로도 이 지식은 중요합니다. 소행성 탐사선이 착륙·샘플을 수집하려면, 낮은 중력·불균일 중력장·표면 유동성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회전이 빠르고 루블파일 성격이 강한 소행성은 표면이 쉽게 흘러내리거나 방출될 수 있으므로, 접근·착륙·이탈 절차를 보수적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지구방위 관점에서도, 감자형과 루블파일 특성은 충돌 회피·편향 미션에서 추력 전달 효율과 표면 반응을 크게 바꿉니다. 즉, 모양은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탐사와 행성방위의 실무 변수입니다.
결국 ‘감자’는 결함이 아니라, 작은 천체가 겪은 물리의 결과물입니다. 그 울퉁불퉁은 중력과 강도, 충돌과 회전이 오랜 시간 직조한 흔적이며, 우리는 그 표면의 자갈 하나, 능선 하나에서도 태양계의 형성사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